피 한 번으로 대장암을 찾는다? 내시경을 못 받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변화

 


건강검진에는 ‘귀찮아서 미루는 검사’와 ‘받고 싶어도 받기 어려운 검사’가 있다. 대장내시경은 많은 사람에게 전자에 해당하겠지만, 경추손상으로 신경손상이 있는 나에게는 후자에 가깝다.


검사를 앞두고 장을 비우는 과정과 실제 검사 과정이 내 몸에는 일반적인 불편함 이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대장내시경을 받기 어려워 대장암 검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그런 상황에서 혈액만으로 대장암 가능성을 선별하는 연구가 발표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정말 피만 뽑으면 내시경이 필요 없어지는 것일까?”라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니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이해해야 하는 소식이었다.


혈액 속 DNA 조각에서 암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발표한 검사법의 핵심은 ‘세포유리DNA’다.


우리 혈액에는 세포가 죽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나온 작은 DNA 조각이 돌아다닌다. 암세포에서 나온 DNA 조각은 정상세포에서 나온 것과 길이, 절단된 위치, 말단 구조, 유전체에 분포하는 방식 등이 다를 수 있다.


연구진은 혈액에서 이 DNA 조각을 추출한 뒤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술로 정보를 읽었다. 여기에 인공지능 딥러닝 모델을 적용해 정상인과 대장암 환자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도록 했다.


쉽게 말하면 특정 암 유전자 하나만 찾는 방식이 아니라, 혈액에 흩어진 DNA 조각들의 여러 특징을 종합해 대장암이 있을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연구 대상은 모두 1,677명이었다. 대장암 환자 302명,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의 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민감도 90.4%와 특이도 94.7%의 의미

연구에서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로 나타났다. 민감도란 실제 대장암이 있는 사람을 검사에서 양성으로 찾아내는 비율이다. 이를 쉽게 표현하면 대장암 환자 100명 중 약 90명을 선별했다는 의미다.


특이도는 94.7%였다. 이는 실제 대장암이 없는 사람 100명 중 약 95명을 정상으로 구분했다는 뜻이다.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였다. 비교적 초기인 1기와 2기에서도 80%가 넘는 민감도를 보였다는 점은 조기 선별검사로서 주목할 만하다.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큰 진행성 대장용종의 민감도는 58.3%였다.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진행성 용종 민감도인 25~40%보다 높은 결과지만, 약 10명 중 4명은 놓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숫자를 볼 때는 높은 성적만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장애가 있으면 검진의 출발선부터 다를 수 있다

많은 건강정보는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으라”는 말로 끝난다. 물론 대장내시경은 대장 내부를 직접 관찰하고 조직검사와 용종 제거까지 할 수 있는 중요한 검사다.


하지만 사람마다 몸의 조건은 다르다.


나처럼 경추손상으로 신경 기능에 손상이 있는 사람에게 장 관리와 검사 준비는 평소에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동과 체위 변경, 검사 전후의 신체 관리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장암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척수손상 환자도 의학적 상태가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준비가 이뤄지면 대장내시경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일률적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반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준비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 척수손상 환자의 대장 정결에는 더 긴 시간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혈액검사는 나에게 ‘조금 더 편한 검사’가 아니라 검진의 첫 단계를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로 느껴졌다.


혈액검사는 아직 확진검사가 아니다

기사 제목만 읽으면 앞으로 대변검사와 내시경을 모두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검사는 대장암 가능성을 먼저 가려내는 선별검사다.


혈액검사 결과가 양성이라고 곧바로 대장암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며, 음성이라고 대장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의심 증상이 있거나 가족력 등 위험요인이 있다면 음성 결과만 믿고 진료를 미뤄서는 안 된다.


또한 혈액검사는 내시경처럼 용종을 직접 발견해 그 자리에서 제거할 수 없다. 대장암 또는 용종이 의심되면 병변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고 조직을 검사하기 위한 후속 절차가 필요하다.


내시경을 받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양성 결과가 나온 뒤 어떤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까지 의료진과 미리 상의해야 한다. 검사 하나가 개발되는 것과 검진에서 진단·치료로 연결되는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대체’보다 ‘선택지’다


이번 연구를 접한 뒤 내가 바라는 것은 대장내시경이 사라지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검진 방법이 늘어나는 것이다.


혈액검사가 더 큰 규모의 연구를 통해 성능을 확인받고 실제 검진 현장에 도입된다면, 장 정결이 어렵거나 대변 채취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의 검진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고령자, 여러 기저질환 때문에 침습적인 검사가 부담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는 검사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건강보험이나 국가암검진에 포함될 수 있는지, 반복 검사를 어느 간격으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장애인이 접근하기 쉬운 채혈기관과 양성 판정 이후의 진료 연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현재 국가 대장암 검진은 만 50세 이상에게 매년 분변잠혈검사를 제공하고, 이상 소견이 있으면 대장내시경이나 대장이중조영검사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혈액검사법이 아직 이 절차를 공식적으로 대체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연구를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내시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선택지가 될 수 있고, 나처럼 내시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는 검진 자체를 시작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누구에게나 같은 검사를 요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각자의 몸에 맞는 방법으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피 한 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당장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채혈이 지금까지 검진의 문밖에 머물렀던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다면, 이번 연구의 가치는 정확도라는 숫자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 본문은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정보성 콘텐츠이며 개인에 대한 의학적 진단이나 검사 권고가 아닙니다. 검사 선택은 현재 건강 상태와 증상을 고려해 전문의와 상의해야 합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46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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