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내렸는데 왜 마트 물가는 그대로일까? 가격표 뒤에 숨은 시간차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높은 환율이 오랫동안 이어졌던 탓인지 숫자만 보면 수입상품 가격도 금방 저렴해질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매장에서 받아본 거래처의 납품단가표는 뉴스 속 환율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상품은 이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고, 어떤 품목은 물류비와 원재료비를 이유로 소폭 인상되기도 했다.
“환율은 내렸다는데 왜 마트 가격은 그대로일까?”
고객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다. 식자재마트를 운영하는 나 역시 같은 질문을 거래처에 여러 번 해봤다. 이번 글에서는 환율 하락이 실제 상품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매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침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거래처 메시지
마트 일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거래처에서 보내온 가격표다.
채소처럼 날씨와 출하량에 따라 매일 가격이 달라지는 품목이 있는가 하면, 수입육과 커피·견과류·과자처럼 환율과 국제 원재료 가격의 영향을 받는 상품도 있다.
어느 날 아침, 수입식품 거래처에서 새로운 단가표가 도착했다. 마침 환율이 많이 내려왔다는 뉴스가 나오던 시기라 가격도 조금 낮아졌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단가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담당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현재 공급되는 상품은 환율이 높았을 때 계약하거나 들여온 물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낮아진 환율로 새로 계약한 상품이 국내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뉴스에서 환율은 하루 만에도 크게 움직이지만, 상품은 계약하고 생산한 뒤 선박이나 항공편으로 운송되고 창고와 도매업체를 거쳐 매장에 도착한다. 환율 하락과 판매가격 사이에 시간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가지 상품에도 여러 비용이 들어간다
수입상품의 가격은 환율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지에서 상품을 구입한 가격에 국제 운송비, 보험료, 관세, 냉장·냉동 보관비와 국내 배송비가 더해진다.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도 안심할 수 없다. 커피 원두나 밀, 설탕처럼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료가 사용되거나 포장재 일부가 수입품이라면 환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이 내려도 산지 가격이나 유류비가 오르면 전체 원가는 그대로일 수 있다. 환율 한 가지가 좋아졌다고 모든 비용이 동시에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보는 것은 가격표 한 장이지만, 그 숫자 안에는 생각보다 긴 유통과정과 여러 비용이 포함돼 있다.
매장도 가격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거래처 공급가격이 내려왔다고 판매가격을 무조건 즉시 낮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장 창고와 진열대에는 이전의 높은 가격으로 매입한 재고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커피가 창고에 20개 남아 있는데 새로운 물량부터 단가가 내려갔다면 기존 재고와 신규 재고의 평균 매입가격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새로 들어온 몇 개만 보고 판매가격을 낮추면 기존 재고에서는 손실이 발생한다.
반대로 납품가격이 올라도 판매가를 곧바로 올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생활물가에 민감한 고객에게 가격표가 자주 바뀌면 매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다른 거래처의 견적을 비교하거나 마진을 일부 줄이고, 묶음행사나 대체상품을 구성하면서 가격 인상을 최대한 늦춘다. 매장의 가격표는 환율 그래프보다 천천히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는 계속 계산과 고민이 이어진다.
고객의 한마디에서 배운 것
며칠 뒤 한 고객이 수입 과일을 살펴보다가 “환율이 내려갔다는데 과일은 언제 싸져요?”라고 물었다.
예전 같았다면 아직 거래처 가격이 내려오지 않았다고만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재 판매하는 상품이 높은 환율에 들어온 물량일 수 있고, 새로 수입되는 물량부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은 고개를 끄덕인 뒤 수입 과일 대신 행사 중인 제철 국산 과일을 골랐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트의 역할이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고객에게는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나 제철 식재료를 안내하는 것도 필요한 서비스다.
환율 하락을 장바구니에서 체감하려면
환율이 낮아진 상태로 어느 정도 유지되고, 그 환율로 계약한 새로운 수입물량이 들어와야 공급가격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후 제조업체와 도매업체의 재고가 교체되고 유통업체의 할인행사가 시작돼야 소비자도 가격 변화를 체감한다.
모든 상품이 똑같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환율의 비중이 큰 수입상품은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을 수 있지만, 인건비와 국내 물류비의 비중이 큰 상품은 변화가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환율 하락 뉴스를 보고 상품가격이 당장 내려갈 것이라 기대하기보다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납품가격과 할인행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가격표는 경제가 생활로 도착한 결과다
마트를 운영하기 전에는 환율을 해외여행이나 달러 투자와 관련된 숫자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납품단가와 판매가격을 확인하면서 환율은 결국 우리 식탁과 연결된 생활경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율이 내려도 오늘의 가격표가 내일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낮아진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새로운 상품이 유통되기 시작한다면 수입물가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경제 뉴스를 볼 때 환율 숫자만 확인하지 않고, 그 변화가 거래처 단가표와 매장 행사상품에 언제 도착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마트의 작은 가격표는 환율과 원재료비, 운송비와 재고가 긴 시간을 거쳐 우리 생활에 도착한 최종 결과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식자재마트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생활경제 정보이며, 특정 외화나 금융상품의 매수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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